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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프로필 재산 근황 학력 /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 뉴스 생방 자막 실수 해프닝

리베로수 2022. 8. 2.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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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프로필 재산 근황 학력  /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 뉴스 생방 자막 실수 해프닝



박근혜 정부 실세였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채널A 뉴스 자막에 깜짝 등장해 이목을 모았다. 인기 드라마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로 잘못 기재한 것이었다.

채널A는 31일 오후 경남 창원 북부리 동부마을에 있는 팽나무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7화에 등장해 관광 명소로 급부상했으나, 늘어난 방문객 때문에 마을이 주차난을 겪고 팽나무의 생육 상태도 우려된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자막 실수는 동부마을 팽나무가 화면에 등장했을 때 나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장하며 지역 명소로 부상”이라는 자막이 떠야 하는데, ‘우영우’가 ‘우병우’로 잘못 표기됐다. 이름이 비슷해 빚어진 실수로 보인다.


채널A 방송 자막 실수를 접한 네티즌들은 “자막 보고 빵 터졌다” “얼핏 보면 잘못된 줄 몰랐을 것 같다” “우영우 자기소개 멘트 늘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병우”라며 대체로 유쾌한 반응을 보였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우영우 변호사 이야기를 다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최근 시청률 15%를 넘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 월드 랭킹 상위권에도 올랐다.

한편,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2021년 9월 징역 1년형을 받았다. 구속기간(383일)이 형기보다 길어 재수감되지는 않았으나 2026년 9월까지 5년간 변호사 개업을 하지 못하게 됐다.


우병우

 

출생
1967년 1월 28일 (55세)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


본관
단양 우씨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학력
영주 국민학교 (졸업)
영주중학교 (졸업)
영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병역
면제 (고도근시)


종교
불교


신장
174cm, 64kg, O형


가족
배우자 이민정
장남 우주성
차남 우현성
장녀 우지원


경력
제29회 사법시험 합격
제19기 사법연수원 수료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 금융조세 조사 2 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 1 과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변호사 우병우 법률사무소 대표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1. 개요
대한민국의 전직 검사.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아 2015년 1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2016년 10월 말 사임하였다.

2021년 9월 16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되었다. 징역이 확정되었지만 1년에 불과해 기존 구속기간인 384일에 미달해 감옥에 가지 않고 되려 초과한 19일에 대해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2월 법무부에서 대한변호사협회에 우병우의 변호사 등록을 취소하라는 명령서를 발송했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향후 5년간 변호사 활동이 제한될 예정이라고 한다.


1.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폭로 이전


1.1. 초년 시절
대외적으로는 1967년 1월 28일 경상북도 봉화군 상운면 가곡리에서 초등교사 우용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84학번인데 1967년 1월생이라는 건 동년배들보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 만 5세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1][2] 하지만 실제로는 1년 조기입학이 아닌 호적에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는 것이 정설. 즉, 실제 생년월일은 1966년 1월 28일. [3] 그 뒤 영주시에서 영주초등학교, 영주중학교,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검사였다. 우병우의 고3 시절 담임교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우병우에게 "왜 검사가 되고 싶으냐"라고 물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와 부정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당돌하리만큼 또박또박 말했다. 참 독특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우병우는 상당히 당돌한 소년이었다는 증언이 여럿 있다. 영주고등학교 재학 중, 우병우는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교사가 있었는데, 그 교사에 대해 "문제가 있으니 바꿔 달라"라고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이사장에게 직접 가서 요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장이 이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어, 교사는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후 영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력고사 전국 석차 53위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4학년[6] 재학 중인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 합격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0세[7]였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나이가 8살 많은 이종걸이 사법시험 기수로 따지면 우병우보다 1 기수 후배다.

 

 당시 29회 사법시험 최고령 합격자는 1949년생(당시 38세)이었다. 게다가 보통 이런 식으로 이른 나이에 사시 합격한 경우는 대부분 변호사로 바로 빠지기 마련인데, 우병우는 그 경쟁률도 뚫고 검사직에 올라섰다. 사시 합격 후 신체검사에서 고도 근시에 의한 ‘질병 또는 심신장애’를 이유로 신체등급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았다.

1990년 24살에 사법연수원 제19기를 수료했고, 검사 임용 중 차석으로 검찰에 들어갔다. 병역이 면제여서 수료 후 군법무관을 거치지 않고 상당히 빨리 임용되었다. 주로 특수부 계통의 검사로 활동했다.

20대 초반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소년 등과의 영광에 + 재벌에 준하는 부잣집의 사위가 되는 경사가 겹쳤지만, 목에 깁스를 두른 듯 직속상관 이외의 다른 선배 검사에게는 좀처럼 굽히지 않는 면모로 인해, "깁스"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된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막힌 곳은 우병우가 다 뚫어줬다."는 말이 나올 만큼, 검찰 내에서 수사능력만큼은 정평이 났던 관계로, 비록 초임검사 시절 정권과 연줄이 닿은 경주지역 유지를 수사하다 밀양지청으로 발령되어 몇몇 지역을 돌아다닌 수모를 겪었을지언정, 우병우의 검찰 내 입지는 탄탄했다고 한다.

우병우 전 수석이 부천지청장(차 장검 사급) 시절 평검사 등 후배 검사들의 수사력 약화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 그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준다는 증언이 나왔다.


1.2. 검사 시절
1990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평검사 시절 서방파 행동대장 이양재[8], 대전 진술파 두목, 이화여자대학교의료원 수련의 임용과정에서 돈을 받은 피부과장 등을 구속했다. 비슷한 시기 서울 시내 폐수·소음·진동을 배출한 환경오염업체 55곳에 이어 세균 폐수를 방출한 을지병원·백병원·차병원·중앙대학교 병원을 적발했다.

1992년 8월 26살에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 검사로 부임, 1993년 경주대학교, 서라벌대학교 이사장 김일윤 前 의원[9]을 학교 공금 53억 인 횡령 혐의로 기소하고, 아파트 감리와 관련해 청탁한 경주시 건축과장 등을 구속하는 등 정권 핵심에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를 수사하다가 창원지방검찰청 밀양지청으로 내쳐졌다고 한다.

그 후 1994년 2월 28살에 수원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2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9년 2월부터는 법무부 국제법무과에서 근무하고,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형사 6부에 부임했다. 이때 영화 배급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직배 영화사 전 대표와 영화사 대표를 구속했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3월까지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팀 특별 수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당시 송해운·윤대진 검사[11]와 함께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 특별수사관 3인방으로 불렸다.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가장 성공한 특검으로 평가받는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인 신승환을 구속함으로써 신승남 총장의 조기 퇴진을 가져왔다.

영월지청장 시절의 우병우

2002년 36살에 춘천지방검찰청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고 [12](부부장 승진), 2003년 8월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부부장으로 올라왔다. 그 시절 이정일 민주당 의원[13], 이상국 KBO 사무총장을 긴급 체포하거나 구속했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도 소환 조사했고, 배기선 열린 우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광식 전 강원랜드 대표와 권오정 전 석탄산업합리화 사업단 이사장, 심기섭 농수산물 유통공사 감사 등도 그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들과 관련해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 수사에 참여했을 때는 크게 두각을 나타냈다. 이때 삼성그룹은 특수 2부 부장검사부터 평검사까지 모든 인맥을 동원해 사람을 붙였으나, 유독 부부장이던 우병우만 삼성그룹 사람들을 절대 만나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회자되었다. 결국 신상규(서울 중앙지검 3 차장)-채동욱(특수 2 부장)-우병우·박용주로 이어지는 수사진은 2003년 12월 업무상 배임의 공소시효(7년)를 하루 앞두고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전격 기소했다.

당시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직접 관여한 일부 인사들을 '표본'으로 기소해 공소시효를 정지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낸 이가 바로 우병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우병우 검사가 수사의 구슬을 뀄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려 이건희&홍라희 부부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어쨌든 이러한 분리 기소는 2007년 '1심보다 더 무거운' 항소심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2004년 6월 38살에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 부장으로 발령받았다(부장 승진). 이용호 게이트 특검 수사 등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특수통 검사'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이때 대구 유니버시아드 휘장 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강신성일 의원, 박주천 전 의원, 김명규 가스공사 사장, 박명환 전 의원 등을 구속시켰다. 당시 우병우는 김향곤 고령군수에게 회식자리에서 요새 민선 자치장들은 목이 뻣뻣하다."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었다.

2005년부터는 법무부 법무실 법조인력정책과 과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재직 시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다. 당시 기사 (대략 1분 후부터)

2007년 2월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자격으로 예금보험공사에 파견되어 부실채무기업특별조사단 단장을 맡았다. 2008년 3월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 조사 2부 부장검사로 활약했다. 서울 중앙지검 금융조세 조사 2 부장 시절이던 2008년 7월 이명박 대통령의 처사촌 김옥희의 공천 청탁 금품 수수 사건[15]을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이 공식 출범한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친인척 사건이었다. 결국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30억여 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같은 해 8월 김 씨를 구속했다. 그리고 김평수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구속했는데, 그 과정은 집요하다 못해 지독할 정도였다. 구속영장이 2번이나 기각된 김평수에 대해 반년 이상 추가 수사를 벌여 결국 배임수재 혐의로 3번째 영장에서 구속시켰다.


1.2.1. 검사장 승진 탈락
2009년 1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 1 과장으로 역진하였다. [16] 중수 1 과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박연차 로비 사건을 기소를 담당하는 주임검사로서 수사하였다. 이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과 함께 수사의 핵심이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취조하였다. 과거 상관과 부하 관계였던 정동기 당시 민정수석이 우병우를 밀어주었다는 후문.

결국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고 그 여파로 임채진 검찰총장과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병우는 법무부 법무실 법조인력정책과장 시절 법무실장으로 함께 근무했던 김준규 前 대전고검장이 신임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면서 2009년 8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차장검사)으로 승진, 2010년 7월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 검찰총장의 최측근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김준규 검찰총장이 퇴임한 이후 2011년 8월 인사에서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으로 좌천되었다.

 

2012년 7월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가게 되었고 [20]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도 탈락하였다. [21] 게다가 똑같이 사법연수원 19기 + 차장검사 + 검사 몫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신분인 조은석, 김강욱, 김수창이 모두 승진했는데 저 셋과 같은 조건인 우병우 혼자 승진을 못했다는 것은 사실상 옷 벗고 나가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22]

그의 검사장 승진 탈락에 대해 ‘너무 많은 재산’이 더 큰 악재였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리고 그때 우병우 검사장 승진 문제로 우병우를 감찰, 검증했던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 비서관이 바로 조응천 現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조응천 의원은 이후 김어준의 파파이스 등에서 우병우에 대해 "내가 우병우 잘랐다. (선천적 4가지 결핍증은 둘째 치고) 노 대통령 강압수사의 직접적 책임이 있는 자이고 야당의 비토가 센데 뭐하러 정치적인 부담을 떠안으면서 우병우를 승진시키냐. 절대 안 됨." 하고 밝혔다. 게다가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에 따르면 우병우가 연구위원으로 있던 시절인 2012년 11월에 우병우의 막내 처제가 외국인 학교 입학비리에 연루되었으며 검찰에 수사를 받은 이력도 있었을 정도. 당시 인천지검 2 차장은 진경준 검사였는데 수사를 언론에 브리핑하면서 연루된 정치인이나 법조인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연관된 정치인'이 있고 둘러대었다. 이 역시도 우병우의 검사장 승진을 막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렇게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탈락하자, 2013년 4월 15일. 검사가 된 지 22년 만에 검찰을 박차고 나왔다. 나가면서 "승진은 다른 놈 다 시켜주고!"라고 하는 등 매우 억울해했었다.


1.2.2. 처가에 관한 행보
검사로 임용한 이후 결혼했는데, 장인은 이상달 정강 중기·건설 회장이었다. 이상달은 딸만 넷을 두었는데, 우병우는 차녀인 이민정과 결혼하였다. 이상달은 원래 사채업으로 재산을 쌓아 중기 건설업을 시작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씨에 대해서는 " 「장래성」 있는 인사들에게 수시로 접근, 친분관계를 쌓은 뒤 요직에 앉으면 인사에 개입하거나 자신의 사업에 비호세력으로 이용해 왔다"는 평이 있다. 그리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최태민이 우병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93년 이상달이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장인 이상달은 기흥 컨트리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원래 기흥 컨트리클럽은 전두환 정부 시절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재향경우회가 사업권을 받아 만든 골프장 사업체였다. 그런데 이 사업 지분의 과반수가 이상달과 그 지인에게 넘어간 것이 드러나자, 1993년 5월 경찰은 이상달이 전직 치안본부장 옥기진 등 경우회 간부에 뇌물을 공여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3년 6월에는 전 치안감이자 경우회 이사인 옥기진이 이상달에게서 다방 운영권을 넘겨받아 이익을 챙긴 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전직 치안감인 옥기진[24] 은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되었고, 이때 우병우의 장인 이상달도 함께 구속되었다. 당시 이상달 회장을 구속한 서울 중앙지검 특수 3 부장은 훗날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정홍원이다.

1993년 7월에는 이인섭 전 경찰청장 역시 이상달에게 1천만 원을 받았다며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었다. [25] 서울 형사 지방법원 합의 21부는 이상달에게 배임 및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했는데, 사건 자체가 전직 치안총수가 구속되는 등 큰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주범인 이상달이 달랑 징역 3년형에 그친 것은 검사 사위 우병우가 무마해준 덕이라는 말이 나왔다.

2008년 6월 이상달이 사망하고 2개월 뒤, 아내 김장자와 딸 넷 등은 기흥 컨트리클럽의 운영사인 삼남개발의 대주주인 SD&J홀딩스를 설립해, 자신들의 지분을 회사 소유로 돌렸고 현재 지분을 각각 20%씩 나눠 가졌다. 우병우 검사의 아내, 처형, 처제들은 강남역 인근의 부동산 1,020평을 상속받았고, 우병우 검사 부부도 부동산 임대 업체 3곳의 주식을 상속받았다.

2008년 골프장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 수사했다. 골프장들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명성대로 샅샅이 뒤지면서도, 정작 처가의 기흥 컨트리클럽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넘어갔다. 기흥 컨트리클럽 안에는 건축물대장에 직원 기숙사로 등록해 놓고 가족이 사적으로 사용하는 불법 별장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변호사 시절
2013년 5월 '홍만표 법률사무소'가 10층에 위치한 서울 서초동 오퓨런스 빌딩 1111호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3년 뒤 조선일보 기자가 바로 이 건물 옥상에 기어올라가 우병우 본인의 황제 소환 사진을 찍는 초대박을 터트린다. [27]

이후 홍만표와의 ‘도나도나 다단계 사기사건’[28]과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건’ 등 몰래 변론 의혹이 생긴 시점도 이 때다. 검찰은 홍 변호사와 우 수석이 공동 변론한 사건이 2013년 한 해 8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변호사가 된 후 모교가 있는 영주시의 재경 향우회에 얼굴을 내미는 등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둔 듯한 행보도 보였다. 그에 대한 검찰 내부의 평가도 썩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특히 변호사로 개업한 후, 후배 변호사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런 사유로 후일 인사권에 문제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리고 변호사 활동 때, 수임료 내역을 숨겨 탈세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변호사로 활동했던 2013년 ~ 2014년의 1년간 62억 순소득을 벌었다.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과 그의 형 조현준 사장의 ‘형제의 난’ 관련 민사사건을 수임하고도 해당 내역을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014년 뇌물 공여 혐의 사건 등 검찰의 내사 단계에 있던 최소 3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적으로 내사는 수사기관이 최대한 은밀하게 범죄 혐의 추적을 시작하는 단계여서 피내사자가 본인이 내사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 전 수석이 어떤 경위로 이 내사 사건을 수임하게 됐는지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변호사로 개업하자마자 2년 전 자신이 수사했던 사건의 핵심 피의자가 관련된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1.4. 민정비서관 시절
청와대 7시간 의혹이 불거지고 민정수석실 조응천 공직기강 비서관이 해임된 후인 2014년 5월 대통령비서실에 민정비서관으로 들어왔다 [29]. 그 과정에서 인사검증 결과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의 압박으로 공직기강 비서관실에서 평가 점수를 높여 준 것으로 드러났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는데, 총재산액이 423억 3,230만 원이나 되어 화제가 되었다. [30] 재산 대부분은 골프장을 운영하던 장인 이상달 회장[31]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었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 등 까다로운 일들을 무난히 마무리한 덕분이었다. 이때 상관인 김영한 민정수석을 제치고 김기춘 실장에게 직보 하는 일이 잦았다. 호랑이를 키웠네 이 때문에 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뒤 사퇴하는 등 '항명 사태'를 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조직을 다잡고 일을 밀어붙이는 기질 면에서 김기춘과 우병우 두 사람은 닮은 점이 있다”라고 하였다.


1.5. 민정수석비서관 시절
2015년 1월 51살의 나이로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승진했다. 민정수석은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공직자 사정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휘하에 민정비서관, 공직기강 비서관, 법무비서관, 민원비서관 등 4명의 비서관을 거느린다. 이들 비서관 밑에는 검찰·경찰은 물론이고, 감사원·금감원·공정위·기무사·행자부 등 사정 관련기관의 최정예 인력이 파견된다.

이로써 노무현 정부 시절 전해철 민정수석에 이어 40대 민정수석 그래 봐야 1년 뒤면 50대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민정수석보다 직급은 한 등급 위지만 권한이나 위상은 비슷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으로 재직한 사람들이 당시 황교안(13기, 59살)과 김진태(14기, 64살)인데, 이들보다 연수원 기수도 한참 낮은 데다가 [33] 10살 넘게 어린 나이로 민정수석이 된 셈이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소년등과(少年登科)를 해서인지 검사 때부터 추진력은 있으나 너무나 당돌해 반대세력이 많았다"라며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잘한다'는 평가가 많고, 실제로 청와대 실세로 평가받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 당시 대구광역시 출신인 김수남(16기)이 대검 차장에 임명되고, 경북 청도군 출신인 박성재(17기)가 서울 중앙지검장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청와대 민정수석-대검 차장-서울 중앙지검장'이 모두 TK(대구경북) 출신에 의해 장악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2015년 2월 검사 관련 인사들은 우병우 라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편법으로 우병우의 측근들을 청와대에 근무시킨 후 검찰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5년 3월부터 김기춘 실장이 기획한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사정을 주도했다. 다만 두 사람이 직접 앞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판단하에 이완구 총리에게 총대를 메게 한다. 이완구는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2015년 3월 12일 포스코 사정을 시작으로 1주일 뒤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해서 경남기업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인다. 그러자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은 백방으로 탄원하다가 끝내 자살하고 만다. 결국 성완종 회장이 자살하면서 뇌물 리스트를 남겨 김 전 실장과 이 총리의 경우 도리어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지게 되었다. 관련기사 자원외교 비리 관련 수사가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친박계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몇몇 친이계 인사들에 수사만 집중적으로 벌리고 흐지부지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35]

김기춘 실장의 후임으로 이병기 실장이 임명되었으나, 온건파인 이병기 실장을 제치고 강경파인 우병우 민정수석이 득세한다는 소문이 나돌더니, 결국 이병기 실장은 20대 총선 후 2016년 5월부로 사임한다.

2015년 봄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 당시, 감염을 피하려 가족들을 미국으로 도피시켰다. 당시는 박근혜 정부가 "괴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라고 엄포를 놓던 때였다. 비서실장 이원종은 2016년 10월 21일 이에 대해 도의적인 문제이지 법률적인 문제는 아니며, 메르스를 피해 가족을 외국으로 보낸 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2016년 4월 20대 총선은 야권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최저 의석수인 180석을 차지할 거라는 꿈을 깨고 여소야대의 형국을 받아 들게 되었다. 이런 뜻밖의 상황에 가장 당황한 사람들 중에 하나가 바로 청와대였는데, 그전에 미리 짜두었던 계획, 즉 180석 이상 차지해서 무소불위로 밀고 나가려던 계획이 완전히 꼬여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의 계획(여 대야 소)대로 되었다면, 국민들은 '새누리당'으로 만의 대한민국 보수 정당 당명 변경 논란을 일으켰다는 '새 마음 봉사단'과 최태민+최순실이란 이름을 들어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36]

이후 현실 적응이 되지 못한 반응들을 계속 보이기 시작했다.


1.5.1. 의혹 제기와 논란
2016년 7월경부터 각 언론에 의해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가 연쇄적으로 폭로되면서 사방팔방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러나 박근혜는 몇 달에 걸치는 기간 동안 우병우를 옹호하였고, 심지어는 "국기문란"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우병우를 보호하였다. 그리고 우병우 자신 역시 2016년 10월 20일 자신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 의혹이 제기됐기에 책임지는 게 맞지 않다”며 사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16년 10월 26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청와대 내부에서 비서진 총사퇴 카드가 나왔다. 그러나 안종범과 우병우 두 사람이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 초반대까지 떨어지자, 2016년 10월 30일 안종범 정책기획수석 등과 함께 경질되었다. 그다음 날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카카오톡 사찰 논란 당시 텔레그램을 싫어했던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쓴다는 것에 조롱과 비웃음이 난무했다.

그리고 재산공개되자마자 자신의 BMW 530i 차량을 처분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우병우의 가족은 제네시스 G80(우병우의 아내가 주로 사용했다고 하며, 우병우가 청문회 등에 출석할 때 의전용으로 사용했던 차량이다.),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우병우가 주로 사용. 마세라티의 플래그십 기함), 포르셰 911과 포르쉐 파나메라('코너링' 논란으로 유명해진 우병우의 아들이 주로 사용) 등 고가의 고급 차량들과 미니밴인 기아 카니발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우병우가 거주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우병우의 동호수로 등록되어 있는 차량이다.

같은 아파트 주민의 말에 의하면 포르셰는 주로 우병우의 아들이 타고 다녔다고 하며, 제네시스는 주로 부인인 이민정이 타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청문회에서 포르셰와 레인지로버는 본인 집의 소유가 아닌 처제 집의 차량이라고 주장하였다


기타
하술 되어 있지만 성격이 무척 오만방자하다. 검찰 출두 시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포토라인에서도 거만한 태도를 드러낸 것만으로도 말 다 한 것이다. 동료 검사들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싹수가 없다.", "너무 뻣뻣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 시절부터 워낙에 자존심 강하고, 자기 잘난 맛에 살아서 별명이 '기브스'[6]였다고 한다. # 마찬가지로 국정농단의 주축이자 악질이지만 개인적인 성격은 상당히 점잖고 예의 바르다고 하는 김기춘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검사장 승진에서 밀린 이유도 '성정이 포악하고 예의가 없다(=안하무인)'는 점이 컸다. [7] 검사장이 아닌 상황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척을 지는데 검사장이 되면 더 많은 적을 만들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면 조직에 부담이 된다.


서울대 법대 선배라도 자기보다 사법시험에 늦게 합격한 사람에게는 반말을 했다고 한다. 문제는 우병우가 소년등과(최연소 합격)[8]에다가 군대도 안 갔기 때문에, 남들이 사법 시험 한창 보고 있을 나이인 25세부터 검사를 했고, 대부분의 신참 검사가 우병우보다 연장자였기 때문에 우병우는 대놓고 선배들에게 반말을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전에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군면제까지 받아서 대학 동기나 선배보다 훨씬 먼저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한 예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었고 우병우와 동일하게 군면제를 받았지만, 무려 9번이나 낙방을 거듭한 끝에 30줄이 약간 넘은 1990년에야 비로소 사법 시험에 늦깎이로 합격했다. 84학번인 우병우보다 7살이나 많고 대학 기수도 5년이나 선배이지만, 우병우가 87년에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1990년에 검사 임용이 되었으니 검사 임용으로서는 윤석열에 비해 2년 선배가 된다. 우병우는 이런 연장자에게도 반말을 한 것이다. 이러니 적이 널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너보다 검찰 후배지만 나이도 더 많고 학교 선배인데, 자기가 검찰 선배라고 반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라고 불만을 드러낸 사람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면 그렇게 일찍 임용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9]
2002년 8월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으로 부임했을 때는 [10] 영월지청에 대학 동기가 그의 밑에서 평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대학 동기인 평검사를 아주 험악하게 조졌다"라고 한다.


2004년 대구지방검찰청 특수부장 시절에는 동향 출신 고위 공무원 모임에 나가 술에 취해 군수에게 막말을 하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요새 민선 지자체장들은 선거로 뽑혀서 그런지, 목이 너무 뻣뻣해. 그래서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말까지 하며 자기보다 나이 많은 군수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머리가 하얗게 센 이태근 고령군수[11]는 "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고 한다.


2016년 11월 민정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검찰 수사에 응하여 출석했을 때 횡령 및 직권남용죄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이에 대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1월 6일 “피의자가 아니라 피고발인, 소명을 듣는다. 이대로 해준다면 수사하는 검사가 아니라 변명을 들어주는 속기사에 불과하다”면서 “기존 의혹 말고도 최순실과 관련하여 조사할 게 많을 텐데, 이러려고 우병우 자택 압수수색도 안 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형사 8부 막내 검사에게 맡겨 한가하게 조서만 꾸미고 있었던 건지”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 그리고 “이런 식으로 검찰 소환 조사가 이뤄진다면 앞으론 우병우가 아니라 우갑우(又甲又), 그리고 검찰이 아니라 겁찰(怯察)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2016년 10월 31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우병우는 텔레그램에 가입해 있었다고 한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 당시 텔레그램을 싫어했던 높으신 분들이 정작 자기들도 텔레그램을 썼다는 사실에 대해 온갖 조롱과 비웃음이 난무했다.
2016년 10월 21일 국회운영위원회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인 정진석 의원이 당시 민정수석이던 우병우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는 확인 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우병우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에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고 하는데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라며 격앙된 말투로 물었다. 이에 이원종은 “의원님 [13]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사이는 다릅니다”라며 우병우가 권력 실세로서 여전히 변함없다는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14] 이에 박지원은 이원종에게 '우병우 수석을 보호한다고 잘될 것 같으냐?'와 같은 발언을 하였다.


유일하게 윗사람이었던 사람을 대할 때를 제외하면 정부 체계의 명목상 윗 계급이거나 연장자 혹은 총리라도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과거 검찰 내부 인터뷰에서 우병우가 "나는 (평검사 시절인) 23살 때도 45살인 계장(수사관)을 수족(手足) 부리듯이 부려먹었다."라고 자랑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대중의 공분을 샀다. 또한 "(지방) 경찰청장도 내 가방을 들어주고 그랬다."[17]며 경찰에 대한 검찰의 우월감과 특유의 권위주의 의식을 드러내면서 안하무인, 비호감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위해 정치인과 시민들이 약 2,000만 원 상당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리고 우병우의 현상수배 포스터를 우에하라 아이의 AV 포스터를 패러디해 만들었다.


경찰 최경락 경위의 자살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
통영함 사건과 관련해 해군의 간식비 횡령이라는 치졸한 혐의로 [18] 황기철 제독에 대한 표적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있다.


위의 자업자득스러운 '우황제(우 황제)'나 '우갑우'란 별명과 더불어, 이름이 앞뒤를 거꾸로 해도 똑같은 회문인 데다 비유가 쉬운 탓에 본인이나 아들이 이름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댓글이나 디시에서 많이 장난치는 별명 중 하나는 "좌캔좌", "병든 소", "우회전이었다"


배우 김의성이 우병우를 닮아서 화제가 되었다. [19] 그래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실사판으로 만들어진다면 김의성이 우병우 배역을 맡아야 한다!"는 반응이 많았는데 실제로 김의성 본인이 스스로 우병우와 닮은꼴을 인정하면서 "이런 배역은 귤만 까먹어도 아카데미상 받을 수 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외에도 닮은 사람이 많다. 홍학표, 트로츠키, 윤다훈 등...

경기도 여주시 모 면사무소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우병우의 남동생[20]이, 옆에 있던 여직원이 우병우를 험담하자 쌍방 간에 폭행이 일어나 여주시에서 징계 조치를 하였다. 아무래도 자기 형이다 보니 험담에 화가 나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네티즌들은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비꼬았다.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일가의 감찰에 나서자 우병우 본인은 물론 처자식과 회사 관계자들까지 조사에 불응했으며, 이에 특별감찰관실에서 질문서를 보내 서면 조사를 하려고 하자 정작 질문하는 내용에는 답변하지 않고 "불법 감찰은 오히려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협박조의 글만 적은 달랑 1장짜리 답변서를 서명, 날인도 없이 제출하였다고 한다. # 정작 자신은 민정수석의 권력을 이용해 수많은 공무원과 민간인을 불법 사찰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우병우 사태 이후 서브컬처에서는 그 특유의 행적으로 인해 아주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캐릭터화가 된 감이 있다. 실제로 영화, 드라마, 소설, 웹툰 등지에서는 우병우를 모티브로 한 것 같은 어린 시절부터 부각되어 사시 패스 쉽게 한 천재 검사, 처갓집의 막대한 백을 얻게 되어 풍부한 재력,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재벌이나 정치인도 무릎 꿇릴 수 있는 검찰청의 권력 등으로 소재를 잡아서 저런 류의 검사 캐릭터가 꼭 하나씩은 나오게 된다. 실제 검사들 사이에서도 우병우는 정말로 희귀 케이스인 1%도 안 되는 검사 권력[21]인데 모든 검사가 다 저런 줄 안다면서 자칫 이미지가 일반화될 소지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검사들도 많다.


2022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오타나 농담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 '이상한 검사 우병우'로 우병우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한다. 때문에 일어난 지도 5~6년이 훨씬 지난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2022년 7월 17일에 뜬금없이 나무 위키 실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7월 31일 채널A에서 실제로 이상한 변호사 우병우로 오타를 내며 다시 한번 실검에 올랐다.


6. 어록
국정 농단을 사전에 방지할 책임도, 사후에 처벌할 책임도 그에게 있었다.
우 前 수석이 민정수석 본연의 자세를 조금이나마 지켰다면 그 자신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겠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금 같은 처지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 사건의 최대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 조선일보 2017년 2월 23일 자 사설#[22]
무능하고 오만한 박근혜 정부의 상징.
- 전원책
우 전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그릇된 충성심과 과도한 권력욕이 박근혜 정부의 파국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경향신문 2017년 4월 7일 자 기사 [단독] 우병우, 아직도 “대통령님…” 공직 망각한 맹목적 충성
돌이켜보면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은 시작도 마무리도 우병우였다.

우병우는 분명 거악의 행동대장이었고,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권력자가 물라면 무는 사냥견 역할에만 몰입해 국정을 혼란시켰다.


- [양선희의 시시각각] 법이 비껴간 우병우의 죄
지난 1년 사이에 포토라인에 4번째 섰습니다. 이게 제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고 또 헤쳐나가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11월 29일.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 포토라인 앞에서 기자들에게# 그런데, 행간을 읽어 보면, '내가 설마 검찰에 꼬리를 잡힐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법망을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라는, 한 점 죄의식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 민정수석이었던 우병우 씨는 역대 정권에서 가장 실패한 ‘민정수석’이란 평가를 받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조사 과정에서 우 씨의 장모가 최순실(최서원)씨와 골프를 쳤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우씨의 청와대 입성이 최 씨를 통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우 씨는 시치미를 뗐고,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사건 전까지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만 했다. 민정수석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모든 권력 기관으로부터 정보를 받는다. 그런 사람이 최 씨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누구든 납득할 수 없다. 큰 권한이 없던 당시 이석수 특별감찰관도 인지했던 사건을 우 씨가 몰랐다면 무능하거나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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