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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연대표

리베로수 2021. 5. 1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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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연대표

 

목차


1. 선사 시대
2.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분열
3. 강대국들의 지배와 하스모니아 왕조
4. 로마의 지배
5. 동로마 제국과 아랍의 지배
6. 십자군 원정 시대
7. 맘루크 왕조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
8.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통치와 이스라엘 건국

 

1. 선사 시대

이스라엘 지역의 고대 지명은 가나안이며, 이곳에 살던 원주민인 가나안족은 기원전 7천 년경부터 농경을 시작하였다.

가나안족은 기원전 3천 년경 청동기 시대부터 셈족, 히타이트족 등 여러 민족의 침입을 받았는데, 이것은 가나안 지역이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 위치하여 두 문명이 자주 충돌했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기원전 13세기까지 주로 이집트의 통치를 받았다.

 

2. 이스라엘 왕국의 성립과 분열

기원전 2천 년경변경 아브라함이 이끄는 히브리족이 가나안에 정착하지만, 엄청난 기근 때문에 이집트의 나일 강 하류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1300년경 모세가 이들을 다시 가나안으로 이끈다.

이후 히브리족은 가나안족과 싸우며 점차 영토를 넓히는 한편, 북쪽에서 내려온 팔레스티나(블레셋)족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결국 다윗 왕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이집트 변경에서 유프라테스 강 유역까지 다스리는 강대국이 되었고, 뒤를 이은 솔로몬 왕은 왕국을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여,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로 삼았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왕위 다툼으로, 결국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된다.

 

다윗의 도시

다윗 왕이 기원전 1004년경에 점령하여 수도로 삼은 곳으로, 구 예루살렘의 남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3. 강대국들의 지배와 하스모니아 왕조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의해,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 왕국에 의해 멸망한다. 바빌로니아 왕국은 남유다의 백성을 본국으로 끌고 가 노예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히브리족을 유다 사람들이라는 뜻의 유대인이라 부르게 된다.

유대인은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 왕국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온다. 이후 이스라엘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더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기원전 129년에는 유대 국가인 하스모니아 왕조가 세워져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

 

4. 로마의 지배

기원전 63년 이스라엘 땅은 로마 제국의 한 주로 편입되었다.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된 헤롯 1세는 성전을 다시 짓고 마사다 요새를 세우기도 했지만, 대중의 신임은 얻지 못했다. 이 시대에 베들레헴에서는 예수가 탄생하였고,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초기 기독교가 발생하였다.

헤롯 1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땅을 직접 통치한 로마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를 인정하지 않자, 이에 유대인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132년경에 유대인의 반란이 모두 진압되며, 이후 로마는 이스라엘 땅의 이름을 유대인이 싫어하는 팔레스티나족의 이름을 딴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유대인들을 추방한다.

 

통곡의 벽

헤롯 1세가 지은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의 일부로, 유대인들의 순례지이다. 로마군의 공격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죽자, 이것을 본 이 벽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5. 동로마 제국과 아랍의 지배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나뉘면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배하게 된 동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공인하여 예루살렘, 베들레헴, 갈릴리 등의 기독교 성지에 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7세기경에는 이슬람교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그 뒤로 약 4백 년 동안 아랍 왕조의 지배가 이어졌다. 그 사이 알 악사 사원 등 많은 이슬람교 사원이 세워지며,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버금가는 이슬람교의 성지가 되었다.

 

알 악사 사원

8세기 아랍 왕조 시대에 지어진 사원으로, 바위 돔 사원과 함께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이슬람 성지이다.

 

6. 십자군 원정 시대

십자군 원정은 성지 팔레스타인과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의 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주장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모인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나 곧 무슬림의 반격을 받아 후퇴하였고, 이후 13세기까지 여덟 차례나 이어진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원정으로 유럽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교통로가 열리며, 많은 유대인들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십자군 원정 기록화

당시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를 표시했기 때문에 이들을 십자군이라고 부른다.


7. 맘루크 왕조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

이집트에서 일어난 맘루크 왕조는 1291년 십자군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지역과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게 된다. 이들은 십자군이 세운 각지의 교회들을 파괴하고 많은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지으며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정치적 혼란과 빈곤, 질병 등으로 쇠퇴하여 1517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예루살렘과 가자, 갈릴리 등지에 모여 살던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핍박이 줄어들어, 유대인의 이주가 늘어났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철도와 도로가 정비되어 대륙과 대륙을 잇는 지리적 이점이 살아났고, 1880년 이후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 1500년대에 5천 명에 불과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8만 5천 명에 이른다.

 

8.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의 통치와 이스라엘 건국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로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었고, 1917년 승전국 중 하나인 영국이 국제 연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는다. 같은 해 영국이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지지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한다.

 

1930년대에는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더욱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지만, 먼저 이 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땅의 소유와 성지 관리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난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농토를 개간하고 사해 광물질을 개발하는 등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기반을 쌓았고, 영국의 위임 통치가 끝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스 정부는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고, 이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스라엘인(헤브라이인)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 땅(팔레스타인, 오늘날 이스라엘의 땅)에 들어온 것은 약 4,000년 전으로, 이곳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에 종사하고 야훼(여호와)의 신앙을 확립하였다.

 

이들의 역사는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 왕 메르엔프타하가 자신의 전적을 기념하면서 세운 전승 비문(戰勝碑文:BC 13세기 후반)에 자신에게 정복된 민족의 하나인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명을 기록하여 두어 역사상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주민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토착 종족에게 압박당하여 일부 부족은 이집트로 이주하였고, 그들은 이집트의 생활에 견딜 수 없어 모세의 인도로 팔레스티나로 탈출하였다. 메르엔프타하가 이스라엘을 격파한 시기가 바로 이때쯤으로 추측된다.

 

BC 11세기 사울은 이집트의 지배가 쇠약하여진 틈을 이용, 가나안 땅의 선주민 펠리시테인(필리 시티 아인)과 싸워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은 예루살렘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이 곳에 왕궁과 야훼의 성전을 세웠다. 그 뒤부터 다윗 왕가와 야훼의 성전과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민족적 자각의 중심이 되었다.

 

다윗 시대의 이스라엘 왕국은 전성시대를 이룩하였으나 솔로몬왕이 죽은 뒤 왕국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정한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대(유데아) 왕국으로 나누어졌다. 이스라엘 왕국은 BC 722년에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였고, 유대 왕국도 BC 586년 신(新)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하여 수도 예루살렘을 점령당하고 멸망하였다. 유대인은 사로잡혀 유명한 바빌론 포로생활에 들어갔다.

 

BC 538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Cyrus II, 재위 559 -530 BC) 때 유대인들은 해방되어 귀국,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교를 성립시켰으나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군대의 통치 하에 들어갔으며, BC 1세기에는 로마의 속주(屬州)로 편입되었다. 로마 지배 하에서 반독립정권을 형성하고 로마 제국에 저항하였으나 티투스 황제 때 탄압당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져 수세기 동안 표류하며 박해받는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에 들어서 세계 각지의 내셔널리즘이 발흥하는 가운데 동유럽 및 러시아에서 유대인에 대한 민족 억압이 드세졌다. 이에 유대인들 사이에 시오니즘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자신들의 조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성지(聖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조국을 세워야만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끝난다고 믿는 시오니즘은 1887년 오스트리아의 테오도르 헤르첼이 스위스 바젤에서 시오니스트 대회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정치 운동화되었다.

 

그러나 지지부진하여 1882년 팔레스타인으로의 최초의 유대인 이민이 시작된 지 35년 뒤인 1917년까지 이주민은 겨우 3만 2000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영국은 당시 중동에서의 영국군 작전기지 역할을 맡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전 세계 유대인을 현혹시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하고, 전후(戰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조국 건설 허락을 약속하였다. 전후에도 동(東) 유럽 여러 국가에서 유대인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1930년대에는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하여 유대인에 대한 대학살이 이루어지자 시오니즘 운동은 급속히 발전하였다.

 

팔레스타인은 1918년 영국의 군정 하에, 1920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 있었으나, 팔레스타인에의 유대인 이민은 격증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7만 정도였던 유대인 인구는 이주민의 유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약 40만으로 늘어났다.

 

유대인 이민의 증대는 아랍인과의 대립·항쟁을 가져왔다. 소수파로의 전락과 토지 상실을 두려워한 아랍인은 19년부터 종종 반(反) 영국·반(反) 유대 폭동을 일으켰고, 1938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1939년까지는 전국적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두 민족의 대립은 한때 가라앉기도 하였으나 대전 말기에는 다시 격화되어, 이번에는 유대인 쪽이 독립을 억제하려는 영국에 반발하여 반영(反英)·반아랍 투쟁을 하게 되었다. 전후에 대립은 한층 격화되었다.

 

영국은 두 민족의 대립을 진압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위임통치 방기(放棄)를 결의, 1947년 문제를 UN에 이관하였다. UN 총회는 1947년 11월 아랍·유대의 연방화 안(案)과 아랍·유대의 개별 국가 건설과 함께 예루살렘을 국제관리하에 두도록 하는 분할 안(案)의 두 안을 상정, 후자가 2/3 이상의 다수로 채택되었다. 팔레스타인을 대소(對蘇) 전략의 일환으로 삼으려는 미국이 시오니즘에 반대하면서도 유대, 아랍 양 민족의 민족자결을 승인하는 구소련과 함께 분할 안에 찬성하였다. 분할 안은 유대인 쪽은 찬성하였으나 아랍 쪽은 반대하여 팔레스타인 각지에서 아랍의 게릴라전이 격화되었다.

 

1948년 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고 영국군의 철수완료와 함께 유대 국가건국위원회 의장 벤 구리온이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였다. 동시에 아랍연맹에 가입한 아랍 제국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에 침입하여 제1차 중동전쟁(아랍 이스라엘 분쟁, 팔레스타인전쟁)이 개시되었다. 이스라엘은 개전시(開戰時)에는 열세였으나 마침내 아랍을 압박하여 1949년 정전(停戰)이 실현되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아랍 대 이스라엘의 대립은 계속되어 1956년 10월 제2차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분쟁, 수에즈 전쟁), 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분쟁, 6일전쟁),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분쟁, 10월 전쟁) 등 모두 4차례에 걸친 전쟁을 하였다.

 

그동안 정치적으로는 1949년 1차 총선 이래 28년간 노동당 연합(마파이당, 시온 노동자당, 노동자 리스트의 3당 연합)이 집권해 왔으나 1977년 5월 9차 총선에서 보수우익의 리쿠드당이 집권하였다. 1983년 7월 총선에서는 노동당 연합이 승리했으나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해 리쿠드당과 타협하여 연립정부를 구성하였다.

 

윤번제 집권 합의에 따라 노동당의 S. 페레스가 먼저 총리가 되고, 1986년에는 리쿠드당의 I. 샤미르가 총리가 되었다. 1990년 3월 대(對) 아랍 정책을 둘러싼 노선 대립으로 양당의 협조가 깨어지자 6월 총리 샤미르는 극우 성향의 내각을 구성하고 대아랍 강경책을 펼쳤다. 그러나 강경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1992년 6월 총선에서 라빈이 이끄는 노동당 연합이 리쿠드당을 누르고 압승하였다.

 

이로써 대 아랍 정책이 유화적 방향으로 선회한 가운데 1993년 9월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의장이 이끄는 PLO(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평화협정을 체결하겠다고 발표했으며, 1994년 5월 4일 미국의 중재로 총리 라빈과 PLO 의장 아라파트 사이에 벌어진 평화회담을 통하여 가자(Gaza) 지구와 요르단 예리코시(市)에 대한 자치협정 체결에 성공하였다.

 

1999년 7월 노동당의 예후드 바라크 정권이 출범하여 중동평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2000년 7월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중재한 캠프 데이비드 협상이 결렬되고 이스라엘 내의 반발세력이 커지면서 바라크는 사임하였다. 2001년 2월 실시된 총리 선거에서 우파인 리쿠드당의 샤론이 당선되어 전임 바라크의 잔여임기인 2003년 11월까지 총리직을 맡게 되었다.

 

이후 샤론은 거국내각 구성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우파 소외세력 및 좌파 비판세력)과 팔레스타인 사태 격화에 따른 좌·우파 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샤론이 성전산을 방문한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가 격화되었고, 2001년 10월에 이스라엘 관광장관이 암살되면서 팔레스타인의 자살 테러 공격과 이스라엘의 보복 군사 조치라는 폭력의 악순환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완전 자치구 침공, 가자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정부 건물 공습, 레바논의 남부 헤즈볼라 지역 공습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의 역사 연대표

 

목차
기원전 17세기~6세기 성서 시대
기원전 536~142 페르시아와 그리스 시대
기원전 63~기원후 313 로마제국의 지배
313~636 비잔틴 지배
636~1516 중세 시대
1517~1917 오스만 제국 지배
1918~1948 영국의 통치
1948~1967 이스라엘 건국, 독립전쟁, 시나이 전쟁
1967~1977 6일 전쟁 및 욤키푸르 전쟁
1977~1987 리쿠드당의 부상, 제1차 레바논 전쟁
1987~1991 제1차 인티파다
1992~1996 노동당의 부활
1996~2001 리쿠드/노동당 경합 시기, 제2차 인티파다
2001~2008 샤론 및 카디마당 집권 시기, 제2차 레바논 전쟁
2009~2019 네탄야후 집권기

 

기원전 17세기~6세기 성서 시대

○ 17세기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 시대

○ 13세기 출애굽

○ 13~12세기 히브리 민족의 가나안 정착

○ 1020 군주제 성립 : 초대 왕 사울

○ 1000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지정

○ 960 솔로몬왕이 예루살렘에 성전 건설

○ 930 유다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

○ 722~720 앗시리아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 멸망

○ 586 유다 왕국, 바빌로니아에게 정복
예루살렘과 첫번째 성전이 파괴
유대인,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감(바빌론 유수)

 

기원전 536~142 페르시아와 그리스 시대

○ 538~515 바빌론으로부터 제1차 귀환, 성전 재건

○ 332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함, 그리스의 지배

○ 167~164 그리스 통치에 대항한 마카비 반란(성공)

○ 164~63 하스모니아 왕조 (유대인 독립국가 시기)

○ 63 로마 장군 폼페이가 예루살렘 점령

 

기원전 63~기원후 313 로마제국의 지배

○ 기원전 63~기원전4 로마의 임명을 받은 헤롯왕 통치

○ 기원전 4~기원후 30 나사렛 예수 활동

○ 66 유대인, 로마에 항거

○ 70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성전 파괴

○ 73 마사다에서 유대인 최후 항전

○ 132~135 로마에 대항하는 바르 코크바 반란(실패)

○ 210 미쉬나(구전법 모음집) 완성

 

313~636 비잔틴 지배

○ 390 예루살렘 탈무드(미쉬나의 주해서) 완성

○ 614 페르시아의 침입

 

636~1516 중세 시대

○ 636~1099 아랍 지배

○ 691 예루살렘 성전 터에 무슬림들이 바위사원 (The Dome of the Rock) 건설

○ 1099~1291 십자군의 통치 : 라틴계 예루살렘 왕국

○ 1291~1516 맘루크 지배

 

1517~1917 오스만 제국 지배

○ 1564 유대 법전 『슐한 아룩흐』 편찬

○ 1860 예루살렘 교외에 최초의 거주지 미슈케노트 샤나님 건설

○ 1882~1903 러시아에서 제1차 대규모 이민(알리야)

○ 1897 테오도르 헤르츨, 스위스 바젤에서 제1회 시온주의자 회의 개최(시온주의협회의 초석)

○ 1904~1914 제2차 대규모 이민(주로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 1909 최초의 키부츠인 드가니아와 최초의 근대적 도시 텔아비브 건설

○ 1917 영국이 오스만 제국의 팔레스타인 지배 종식
영국,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조국 건설을 보장’

 

1918~1948 영국의 통치

○ 1919~1923 제3차 대규모 이민(주로 러시아에서)

○ 1920 히스타드루트(유대인 공동체 기관)와 하가나(자위대) 창설, 국가평의회 구성

○ 1921 모샤브 나할랄 창설

○ 1922 대영제국, 국제연맹의 결의에 따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위임통치권을 부여받고 유대인 이민의 팔레스타인 정착을 촉진하는 임무 수임. 히스타드루트가 유대인 이민 정책을 실질적으로 관리

○ 1924 이스라엘 공업협회 창설

○ 1924~1932 제4차 대규모 이민(주로 폴란드에서)

○ 1925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 스코푸스산에 설립

○ 1929 헤브론 유대인들이 아랍군들에게 학살

○ 1931 유대인 지하 기구인 에첼 창설

○ 1933~1939 제5차 대규모 이민(주로 독일에서)

○ 1936~1939 아랍군의 반유대 폭동 개시

○ 1939 영국 백서, 유대인 이민을 제한

○ 1939~1945 제2차 세계대전 : 유럽에서 유대인 대학살

○ 1941 레히 지하운동 조직, 에첼에서 분리

○ 1944 영국군 소속으로 유대인 여단 조직

○ 1947 국제연합, 팔레스타인에 아랍과 유대인의 별개 국가 건설 결정(아랍측은 반대)

 

1948~1967 이스라엘 건국, 독립전쟁, 시나이 전쟁

○ 1948 이스라엘 건국 선포(5월 14일)
영국의 위임통치 종료(5월 14일)
아랍 5개국, 이스라엘 침공(5월 15일)
독립전쟁(1948.5월~1949.7월)
이스라엘 방위군 조직

○ 1949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라크는 제외) 간의 휴전협정 조인
초대 크네세트(의회) 선출
이스라엘, 국제연합의 5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

○ 1948~1952 유럽 및 아랍 각국에서 대규모 이민

○ 1956 시나이 전쟁(제2차 중동전쟁)

○ 1962 아돌프 아이히만 처형

○ 1964 국립 수로(水路) 완공, 갈릴리 호수에서 남부 불모지로 물 수송

 

1967~1977 6일 전쟁 및 욤키푸르 전쟁

○ 1967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 1968~1970 이집트와 소모적 무력충돌

○ 1973 욤키푸르(대속죄일) 전쟁(제4차 중동전쟁)

○ 1975 이스라엘, 유럽공동시장(ECM)에 회원국으로 가입

 

1977~1987 리쿠드당의 부상, 제1차 레바논 전쟁

○ 1977 리쿠르당 총선 승리, 노동당 집권 종료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예루살렘 방문

○ 1978 캠프데이비드 협정 조인

○ 1979 이스라엘과 이집트, 평화조약 조인

○ 1981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
이스라엘 공군기, 이라크의 원자로 폭파

○ 1982 이스라엘, 시나이로부터 철수 완료
이스라엘, 레바논에 근거한 PLO 공격을 종식시키기 위해 ‘갈릴리를 위한 평화작전’(제1차 레바논 전쟁) 수행에 착수

○ 1984 총선 후 거국연립내각 형성(리쿠드-노동당)
모세 작전 수행, 에티오피아에서 유대인 이민

○ 1985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자유무역협정 조인

 

1987~1991 제1차 인티파다

○ 1987 팔레스타인의 민중봉기(인티파다) 시작

○ 1988 우주 통신위성 오페크 1호 발사

○ 1989 이스라엘, 4개조 평화안 제안
구소련 유대인의 대이민 시작

○ 1991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걸프전 기간에 지대지 미사일로 이스라엘 공격
미국과 소련의 후원으로 마드리드에서 중동평화회의 개최

 

1992~1996 노동당의 부활

○ 1992 중국 및 인도와 외교 관계 수립
노동당의 라빈 총수가 이끄는 새 정부 출범

○ 1993 미국과 러시아 입회 하에 이스라엘과 PLO가 잠정 자치협정에 서명
이스라엘과 교황청, 기본 협정에 서명

○ 1994 가자지구와 제리코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교황청과 수교, 모로코와 튀니지에 대표 사무실 설치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

○ 1995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 자치 확대
평화 집회에서 이츠하크 라빈 총리 피격 사망
시몬 페레스 총리직 승계

○ 1996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이슬람교 원리주의자 테러 자행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북부 지역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분노의 포도(Grapes of Wrath)’ 작전
오만 및 카타르와 무역대표사무소 각각 교환 설치
총선 통해 리쿠드당 집권

 

1996~2001 리쿠드/노동당 경합 시기, 제2차 인티파다

○ 1997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헤브론 협정 서명

○ 1998 와이리버 협정 서명

○ 1999 총선 통해 노동당 집권 에후드 바락 총리 취임
샤름-엘 쉐이크 평화협정 조인

○ 200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스라엘 방문
남부 레바논 내 군사지역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이스라엘 유엔 내 지역별 그룹에서 ‘서유럽 및 여타 그룹(WEOG)’ 분류
제2차 인티파다 발생
바락 총리 사임
주오만 이스라엘 무역대표사무소 폐쇄

2001~2008 샤론 및 카디마당 집권 시기, 제2차 레바논 전쟁

○ 2001 아리엘 샤론(리쿠드) 총리 당선, 연립내각 구성
샤름-엘쉐이크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 발행(미첼 보고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안보실행작업안(테넷 휴전안) 제시
레카밤 즈비 이스라엘 관광부 장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 의해 암살

○ 2002 팔레스타인 대량 무차별 테러에 이스라엘 방호벽(Defensive Shield) 작전 개시

○ 2003 제16대 총선, 샤론 총리 연임
중동 평화를 위한 Quartet (미국 · 러시아 · EU · UN)에 의한 중동 평화 로드맵 마련

○ 2004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 팔레스타인 수반 사망 (일부에서 독극물 암살설 제기)

○ 2005 마흐무드 압바스(Mahmoud Abbas) 팔레스타인 수반 선출
샤름-엘쉐이크 중동 평화 정상회담(이스라엘 · 이집트 · 팔레스타인 · 요르단)으로 이-팔 평화협상 재개
팔레스타인 제정파 간 대이스라엘 무장투쟁 휴전 합의
가자지구 및 서안 북부로부터 일방 철수(disengagement policy)
샤론 주도 중도 성향의 카디마(Kadima) 창당

○ 2006 제17대 총선에서 카디마가 제1당이 되어 올메르트 총리 취임
하마스(Hamas)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 정부 수립 (국제사회의 대팔레스타인 제재 시작)
헤즈볼라의 도발에 따른 제2차 레바논 전쟁 및 휴전 (유엔 결의안 1701 채택)

○ 2008 이스라엘-가자 간 분쟁(Cast Lead 작전)

2009~2019 네탄야후 집권기

○ 2009 제18대 총선 실시, 네탄야후 총리 취임

○ 2012 이스라엘-가자 간 분쟁(Pillar of Defense 작전)

○ 2013 제19대 총선 실시, 리쿠드-베이테이누 연합, Yesh Atid, Jewish Home, 하트누아로 연정 구성
이-팔 협상 재개 및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

○ 2014 파타-하마스 간 통합정부 구성
이스라엘-가자 간 분쟁(Protective Edge 작전)

○ 2015 제20대 총선 실시, 네탄야후 총리 연임
Likud, Kulanu, Jewish Home, Shas, UTJ로 연정 구성, 제34대 정부 출범

○ 2019 제21대 총선 실시, 사상 처음으로 연정 구성 실패 (제22대 총선 9.17 실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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