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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 사살 사망 탈레반은 어쩌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나?

리베로수 2021. 8. 2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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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 사살 사망 탈레반은 어쩌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나? 오사마 빈 라덴 Osama bin Laden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이집트 과격단체들과 동맹을 맺고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신이 조직한 테러 조직 알카에다를 통해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하여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와 9·11 미국 대폭발 테러 등의 배후자로 지목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


출생-사망
1957.3.10 ~ 2011.5.2


별칭
오사마 모하마드 빈 라덴


국적
사우디아라비아


활동분야
테러리즘


1957년 사우디아라비아 남서부의 제다에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예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이주해 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건설회사를 세워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킹압둘아지즈대학교에서 이슬람교 스승들의 영향을 받아 정치와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급진 이슬람원리주의자로서, 1980년대 중반에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가 아랍 의용군을 조직하고, 도로 건설 및 난민 구호, 병참 업무 등을 담당하면서 소련(러시아)군에 맞섰다. 이후 점차 전투로 전향해 1986년부터 실전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89년 잘랄라바드에서 파키스탄의 지지를 등에 업고 친소련 정부와 맞서다가 큰 희생을 치르고 자신도 부상을 당하였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해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를 위해 복지기구를 건립하고,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사우디아라비아의 방어를 자청하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이교도인 미국인들에게 방어를 맡기자 이에 반대하다가 제다에 연금되었고, 1992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수단의 수도 카르툼으로 건너갔다. 

 

이때부터 반미(反美) 인사가 되어 이집트 과격단체들과 동맹을 맺고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자신이 조직한 테러 조직 알 카에다(Al-Qaeda)를 통해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1993년 발생한 소말리아인(人)들의 미국 평화유지군 살해사건에 빈 라덴의 부하 일부가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1996년 미국 국무부의 '주요 테러 재정지원자'로 지목되었고, 같은 해 수단에서 축출되자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그는 '미국인과 유대인을 적대시하라'는 교시를 내리고 성전(聖戰)을 선언한 뒤, 지하드 등 다양한 회교 테러 조직들과 함께 전 세계 미국 시설들에 대한 공격을 촉구하였다. 1998년 8월 224명이 사망한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었고, 미국 정부는 그에게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면서 자신이 이끄는 알 카에다를 중심으로 전세계 이슬람 테러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따라 미국은 1998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기지와 수단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장에 미사일 공격을 명령하기도 하였다.

1999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숨어 지내면서 계속 대미 테러 활동을 벌여왔는데,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 맨해튼의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인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펜타곤)에 대한 항공기 납치 자살테러사건 역시 그가 조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1년 10월 말 미국은 그가 숨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전면전 공격과 국제 테러 조직들에 대해 무차별 응징을 선언했다. 수 년간 은신 생활을 해온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5월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외곽에 있는 한 가옥에서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빈 라덴 지원설' 아프간 테러범, 환대 속 카불 입성

 

 


하카니 네트워크 수뇌부…"안보 우선·여성들 안전할 것" 주장

미국의 수배자 명단에 오랫동안 올라 있던 아프가니스탄의 테러용의자가 탈레반이 재 장악한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테러 작전에 연루된 혐의로 미국의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칼릴 알라흐만 하카니가 카불 최대 이슬람 사원에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칼릴 알라흐만 하카니는 탈레반 연계 조직 '하카니 네트워크'의 지도자 중 하나로, 1970년대 후반 이 조직을 세운 잘랄루딘 하카니의 형제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알카에다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서 탈출할 때 이를 지원했고 알카에다 조직원들에게 피난처와 훈련 등을 제공했으며 여러 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정부는 2012년 하카니 네트워크를 외국 테러조직으로, 2011년 칼릴 알라흐만을 특별지정 국제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또한 2014년에는 잘랄루딘의 아들로 현 수장인 시라주딘 하카니의 행방과 관련한 정보에 내건 상금을 최고 500만 달러(약 59억 원)에서 최고 1천만 달러(약 118억 원)로 올리면서 시라주딘의 형제인 아지즈와 삼촌인 칼릴 알라흐만에 대해서도 현상금 최고 500만 달러를 내걸었다.

이날 칼릴 알라흐만 하카니는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안보가 없다면 생명도 없다"며 "우리가 안보를 제공하고 남성과 여성을 위한 교육, 경제, 무역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하카니는 나중에 NYT 사진기자에게 아프간 내 언론인과 여성들이 안전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칼릴 하카니는 미국과 유엔 테러리스트 명단에 모두 올라 있으며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새로 꾸릴 정권에서 하카니가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는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 하미드 카르자이 전 대통령 등 아프간 정부 측 인사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어쩌다 공포의 대상이 되었나

 

 


국제질서의 새 변수로 떠오른 아프간의 탈레반 정부
‘이슬람 신정국가’ 구현 명분으로 끔찍한 인권 유린 일삼아


9월11일 완전 철수를 예정하고 있던 미군의 철군이 완수되기도 전에 아프가니스탄은 완전히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빨리 아프간 정부가 붕괴될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 있는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아프간 전쟁의 종전을 선언했다. 

 

미국에서는 무책임한 철수를 감행한 바이든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음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실수로 시작된 전쟁을 지속하지 않겠다”며 미군 철수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카불 공항은 비행기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아프간을 탈출하려다 떨어져 죽는 끔찍한 사고까지 발생하는 등 아프간인들의 엑소더스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정도다.

소련도, 미국도 두 손 들고 물러난 아프간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의 미래에 대해 장밋빛 청사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1997년부터 미군에 의해 진압당했던 2001년까지 탈레반은 아프간을 지배했다. 당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들의 끔찍한 만행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과거 전적에 비추어 전문가들은 모두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심각한 여성 인권 유린과 난민 발생 등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탈레반 집권으로 인해 국제질서 또한 요동치게 될 것이다.

탈레반의 등장을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탈레반의 형성과 성장 배후에 미국이 자리한다. 더불어 약소국 아프가니스탄과 강대국의 대결 역사가 등장한다. 고대부터 교통과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았던 아프간은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다. 알렉산더 대왕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족과 문명이 아프간 땅에서 문명의 꽃을 피웠다. 동시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아프간은 결국 19세기 제국주의 팽창과 더불어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에 휩싸이게 된다. 독립 이후 평화로운 시기도 있었으나 1970년대 중반 아프간 내전이 시작되면서 혼란하고 험난한 현대사가 이어진다.
 
쿠데타로 수립된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이 이슬람 개혁정책 추진으로 공산주의를 탄압하자,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 공산당 일당 독재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을 수립한다. 이번에는 급진적인 공산화를 진행시키며 이슬람을 탄압하자 이슬람 세력은 ‘무자헤딘’이라는 무장투쟁 조직을 결성해 투쟁한다.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은 1992년까지 존재는 하지만 여러 군벌의 득세로 사실상 이름만 남게 되는데, 무자헤딘이 득세하자 소련은 공산주의 세력이 소멸되는 것이 두려워 군대를 파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다. 이것이 1980년대 발발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구소련의 공산주의 세력 약화 방어를 명분으로 한 전쟁은 1989년까지 계속됐으나, 막대한 전비를 탕진하고 난 후 소련은 저유가 경제위기 때문에 결국 철수하고 만다. 구소련 붕괴가 아프간 전쟁 실패와 무관하지 않았다고 할 만큼 당시 구소련의 손실은 막대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구소련의 팽창을 막고자 무자헤딘을 비롯한 무장투쟁 조직에 막대한 돈과 무기를 지원했다. 문제의 탈레반은 바로 이 시기에 형성됐다.



 


아프간 사람들이 카불 공항을 탈출하기 위해 활주로 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탈레반, 미국이 소련 견제 위해 키워낸 조직

탈레반은 1994년경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던 이란계 파슈툰족 2만 5000명 정도의 학생이 만든 조직이었다. 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파슈툰어로 탈레반은 ‘학생’을 뜻하는 말이다. 이슬람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이라는 이상향을 지향점으로 삼고, 사명감에 똘똘 뭉쳐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에 나섰다. 공산주의 정권 붕괴 후 무자헤딘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오랜 내전과 부정부패에 질려 있던 민중들은 탈레반을 지지했다.

 

 최고지도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1997년 정권을 장악했다. 1998년에는 영토의 거의 90%를 점령했지만 아프간은 더욱 혼란의 늪에 빠져들 뿐이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이슬람 신정국가 구현이라는 탈레반의 국가 건설 과정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잔인하고 끔찍한 통치 방식이었다. 여성들을 부르카 속에 가두고, 집 밖 외출을 통제하는 등 인권 유린의 수위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폭파했던 사건은 탈레반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1979년 시아파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있었고, 와하비즘을 국가 이념으로 삼는 극단적 보수주의 수니파 국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있었지만, 탈레반이 구현한 ‘이상적 신정국가’와는 차이가 컸다.


 
결국 2001년 9·11 사태가 발발하자 미국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간을 침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표현대로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미국은 9·11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을 탈레반이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켰다.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도, 그리고 탈레반도 미국이 구소련을 방어하기 위해 키워낸 무장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다른 조직이지만 자금 조달 등 상당한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 오사마 빈라덴은 마침내 아프간 침공 10년이 지난 2011년에야 사살됐지만 탈레반이 파키스탄 국경 밖으로 쫓겨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국은 개전(開戰) 한 달 만에 수도인 카불과 주요 도시 칸다하르를 점령했다. 그러나 탈레반과의 전쟁은 20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미국은 결국 탈레반의 손에 아프간을 넘겨준 채 철수하고 말았다.

반면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연명해 오다가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아프간이 미국의 관심권에서 멀어지자 세를 불려 파키스탄 서북부를 장악하며 부활했다. 파키스탄 북부는 아프간의 주요 부족인 파슈툰 부족이 대부분이며 산악 지역이라 사실상 국경이 별로 의미가 없는 지역이다.

 

 무기 제조 등에 필요한 모든 인력과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이니, 탈레반의 요충지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간은 전 세계 헤로인의 90%가 생산되는 마약 생산기지인데, 탈레반은 마약 제조로 자금을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와 전쟁 비용을 지불하고도 아무 성과나 수확도 없이 철군한 셈이다.

이에 비해 아프간을 탈환하려는 탈레반의 의지는 매우 강했다. 무엇보다 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사명감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에 대한 의지는 그동안 전쟁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략과 전술을 통해 더욱 진화했다. 그 결과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까지 점령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아프간 정부 내부의 리더십 붕괴도 한몫했다.

아프간 정부군은 전선을 축소해 대도시 위주로 방어하려 했으나, 이는 군기 빠진 군대에서 효력이 없는 방어 전략이었다. 탈레반이 여러 개의 조직으로 구성돼 있음에도 중앙 통제력을 확보해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은 놀라운 대목이다. 대외적으로는 아프간을 외부적으로 고립시켜 우방 국가의 지원을 차단하는 전략을 썼고, 내부적으로는 각 지방의 주지사와 같은 공직자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비리 혐의 등으로 협박하며 무력화시킴으로써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카불을 포위했다.


反탈레반 세력 규합되면 내전 가능성도

전 세계가 무방비 상태로 탈레반의 카불 입성을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던 가운데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불신을 인식했는지 곧바로 유화적 성명을 내놓았다. “외국 군대 협력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복수를 하지 않을 것은 물론 외국인들의 안전과 생활을 보장하고 여성들의 교육과 취업을 보장하는 것과 함께 최대한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현실은 탈레반의 성명과 다르다. 이미 지방에서는 미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있으며,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에게 탈레반이 총을 겨눈 사진들이 보도되고 있다. 과거 탈레반 집권을 경험한 사람들이 탈레반의 ‘감언이설’을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


탈레반이 이끄는 아프간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도 주목할 만하다. 여성 인권 유린, 마약 확산, 쏟아지는 난민 문제 등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인류애적인 문제가 산재한 가운데 러시아는 서둘러 탈레반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탈레반과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는 파키스탄은 물론이고, 이란과 중국은 탈레반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

파키스탄은 특히 1990년대 중후반 탈레반의 성장과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에 큰 역할을 한 나라이고, 무기와 정보, 인력 등을 제공해 주고 있다. 현재까지도 파키스탄 북부는 탈레반 활약의 주요 무대이며, 탈레반을 통해 파키스탄은 인도를 견제하려 하고 있다. 한 가지, 파키스탄 탈레반은 아프간 탈레반의 중앙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조직으로 남아있는데, 인도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어 아프간 탈레반과는 별도의 전략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탈레반과 중국의 관계는 향후 국제질서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입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외교는 탈레반이 신장·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인 ‘ETIM’을 통제할 수 있도록 탈레반 달래기에 주력하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중국은 이란과 아프간에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이란으로 연결되는 배후지역을 획득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반미(反美) 대륙 세력 형성이라는 든든하고도 큰 성과를 얻게 된다. 탈레반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지만, 이미 중국의 기술적 도움이 절실한 탈레반은 중국 왕이 외교부장과 만나 아프간에 체류 중인 중국 기술자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는 보도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를 보면 중국은 상당 부분 탈레반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탈레반이 신장·위구르 독립운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국내 사정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가운데 앞날을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탈레반과 맞서던 군벌 세력과 구(舊) 정부군이 합류해 ‘반(反) 탈레반’ 세력을 형성한다면, 은 또 다른 내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이목이 에 쏠려 있는 가운데 주변국들과 강대국들의 움직임이 아프간 국내 상황을 조정하는 데 한몫할 수 있어 소용돌이는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런 혼란 속에 민간인들의 피해만 극심하게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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